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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고문가해자 처벌을 위한 ‘추재엽’ 법안에 대하여 (2012.10.30)2017-11-14 15:2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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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고문가해자 처벌을 위한 ‘추재엽’ 법안에 대하여
 
 
임채도 (인권의학연구소 연구기획실장)
  
 
   지난 2012년 10월 11일 서울남부지법에서 현직 양천구청장에 대한 공직선거법 위반, 위증, 무고죄 등에 관한 선고가 있었다. 이 재판은 현직 구청장이 1985년경 보안사 수사관으로 재직할 때 고문가해 행위에 가담했는지 사실여부가 핵심 쟁점이었다. 법원은 판결문에서 ‘피고인이 고문행위에 가담한 사실이 있음에도 고문에 가담하지 않았다는 취지로 위증하고, 고문행위를 폭로한 사람을 허위사실 유포로 도리어 무고하여 엄중한 처벌이 마땅하다’고 판단하였고, 피고인에 대해 1년 3개월의 실형을 선고하고 법정구속을 명하였다. 이 선고가 언론에 보도된 후, 인터넷 포털사이트에서는 ‘추재엽’이라는 이름이 실시간 검색순위에 오르는 등 적잖은 파장이 일기도 했다.
 
   이 판결은 고문범죄에 대한 최근 법원의 견해를 읽을 수 있다는 점에서 고문 가해자 처벌이라는 과거사청산과제와 관련하여 몇 가지 검토해 볼 만한 부분이 있다.
 
   첫째, 당해 법원은 고문행위에 대해 “결코 일어나서는 안 될 위법행위일 뿐 아니라 다시 되풀이 되어서도 안 될 중대한 인권침해에 해당하는 것”이라고 규정하고, 특히 피고인의 경우 “고문 등 위법행위는 업무수행과정에서 통상적으로 저지를 수 있는 정도의 잘못을 넘어선 것으로서 그 위법행위가 지극히 조직적으로 억압적이며 비도덕적이어서 그 불법성이 중대한 경우에 해당한다”고 밝히고 있다.
 
   둘째, 법원은 피고인이 자신의 과오를 반성하지 아니하고 범행을 부인하고 있는 점, 피고인은 물론 보안사 수사관 전원은 이러한 고문행위를 은폐, 축소시키려 하고 있는 점 등을 고려 엄중한 처벌이 마땅하다고 설시하고 있다.
 
   셋째, 법원은 고문피해자의 경우, “보안사 수사관들에 의하여 불법적으로 연행되어 구금된 상태에서, 생명에 위협을 느낄 정도의 극심한 고문과 협박 등 중대한 인권침해를 당하여 그 신체와 정신에 심각한 타격을 입고, 현재까지는 물론 앞으로도 정상적인 생활이 불가능할 정도의 커다란 피해를 입게 되었음에도 그에 대한 진정한 사과나 보상을 받았다고 보기 어렵고, 현재까지도 자신을 고문한 가해자들의 처벌을 바라고 있는 점” 등을 들어 양형을 결정하였다.
 
   넷째, 법원은 피고인에 대한 정상참작의 여지로 피고인의 전과가 없다는 점, 위증이 판결 결과에 영향을 미치지 않은 점, 기타 피고인의 연령, 성행, 환경, 범행 동기, 수단과 결과, 범행 후의 정황을 나열하고 있을 뿐 피고인이 ‘과거 공직에 있으면서 국가에 봉사했다는 전력’을 인정하지 아니하고 있다.
 
  고문범죄의 단호한 처벌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과거 서울고법의 판례(2000. 6. 22. 선고 2000노507판결, ‘김근태 고문사건’)에서도 “수사기관의 불법구금, 수사의 편의를 위한 고문 등의 가혹행위는 법치주의의 근간을 뒤흔드는 신체의 자유의 심각한 침해로서 반드시 근절되어야 할 범죄행위이므로 그와 같은 범죄자에 대하여는 엄벌할 필요가 있다”고 밝힌바 있다. 법원의 이와 같은 판단은 사법적으로 고문범죄 그 자체의 엄중함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의 고문범죄에 대한 근절의지와 시민 일반의 응보적 처벌감정을 반영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지금까지 우리사회에서 숱하게 논란이 된 고문범죄에 대해 법원이 제대로 처벌한 사례를 우리는 알지 못한다. 위 서울고법의 판례에서도 고 김근태 선생을 고문한 고문경관 이근안에 대한 최종선고형은 징역7년, 자격정지7년에 불과했다. 지난 2002년 10월 발생한 서울지검 피의자 고문치사사건(이른바 조천훈 사건)의 가해자들 역시, 검사 징역 1년 6월, 나머지 검찰직원 및 경찰관에 대해서는 징역 1년 집행유예 2년에서 징역 2년 6월과 일부 자격정지 병과의 형이 전부였다.
 
   2000년대 발생한 형법 125조 위반범죄(공무원에 의한 폭행, 가혹행위 죄) 판결에서 법원은 고문가해혐의 피고인들에 대한 ‘정상 참작’ 사유로 “경찰공무원으로서 20년간 근무하여 온 점, 이 사건 판결이 확정되면 공무원 신분을 상실하는 점”(대구지법 2003.1.10.선고, 2001노1763판결, 징역6월에 집행유예1년 및 자격정지 1년 선고), “피고인들이 격무에 시달리면서 경찰관으로서 성실히 복무해왔고, 유죄가 확정되면 경찰직을 떠나야 하는 등 신분상으로나 경제적으로나 그에 상응하는 대사를 치르게 되는 점 등”(춘천지법, 2005.5.13.선고 2004노549판결. 징역6월에 집행유예 2년 및 자격정지 2년 선고)을 들고 있다.
 
   법무부 통계에 의하면 1999년 7월부터 2000년 6월까지 1년간 폭행, 감금, 고문, 직권남용 등 인권침해를 이유로 경찰, 검찰, 국정원 직원 등이 고소고발당한 사건은 1,035건이고 이중 기소된 것은 7건, 나머지는 불기소 처분되었다. 이러한 고문가해자 처벌의 현실은 법원이 겉으로 보이는 고문범죄에 대한 언술적인 단호함과 달리 실제 그러한 처벌의지가 과연 있는가라는 의문을 자아내기에 충분하다. 경찰관으로 오래 근무한 경력이나 공무원 신분으로 고문범죄에 가담하는 것에 대해 오히려 가중의 책임을 묻는 것이 당연함에도 불구하고 정반대의 솜방이 처벌이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다. 고문가해자를 처벌하지 않는 것뿐만 아니라 가볍게 처벌하는 것 역시 고문범죄가 지속되는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라 할 수 있다.
 
   이번 양천구청장 판결의 경우, 비록 고문가해범죄에 대한 처벌은 아니지만, 과거의 고문가담행위에 대해 위증, 무고의 죄로 1년의 실형을 선고하고 법정구속한 것은 그나마 법원의 고문범죄에 대한 처벌의지를 보여준 것으로 진일보한 의미가 있다할 것이다.
 
   최근 2,3년간 1960년대~80년대 고문에 의한 간첩조작사건 피해자들에 대해 법원이 재심을 통해 고문피해 사실을 확인한 경우가 늘고 있다. 현재 70여 건이 재심이 진행되고 있거나 무죄가 확정되었다. 그러나 과거 악명높은 간첩조작사건에 연루된 고문가해자들의 경우는 공소시효가 완성되었다는 이유로 처벌의 대상조차 되지 못하고 있다.
 
   앞서 보았듯이, 법원은 고문범죄가 ‘일어나서도 되풀이 되어서도 안되는 중대한 인권침해이자 법치주의의 근간을 위협하는 기본권 침해’임을 확언하고 있고, 고문피해자들은 당시 고통이 계속되고 있어 앞으로의 정상적인 생활도 불가능해 보이고, 피해의 보상이나 복구가 되지 않고 있고, 고문가해자들에 대한 처벌을 원하고 있다. 그럼에도 고문가해자들을 아무런 법적 제재 없이 묵과하여 대로를 활보케 방치하는 것은 사회정의에도 어긋나고 반인륜적 범죄에 대해 공소시효를 배제하는 국제법의 현실과도 괴리된 것이다.
 
  우리나라가 1995년 비준,발효한 UN 「고문방지협약」 제4조는 “1. 당사국은 모든 고문행위가 자기나라의 형법에 따라 범죄가 되도록 보장하며, 고문 미수, 고문 공모 또는 가담에 해당하는 행위도 마찬가지로 다룬다. 2. 당사국은 이러한 범죄가 그 심각성이 고려된 적절한 형벌로 처벌될 수 있도록 한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이미 국내 발효된 「국제형사재판소규정」 제29조에서도 “재판소 관할 범죄에 대하여는 어떠한 시효도 적용되지 아니한다”는 규정이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 헌법재판소는 1995년 7월 21일 고문범죄의 공소시효제도에 대해 ‘원칙적으로 입법자의 폭넓은 재량에 속하며 고문범죄를 공소시효의 적용대상이 되도록 한 것이 헌법규정에 위반하여 입법재량권을 자의적으로 행사한 경우에 해당한다고 볼 수 없다’고 하여 고문범죄에 대한 공소시효 규정을 합헌이라고 결정한바 있다(헌법재판소 95헌마8,9,16,17 결정).
 
   요컨대 고문범죄 처벌에 관한 한 국회의 입법노력이 매우 절실하다. 고문방지협약 제4조의 규정에 의거, 형법상 고문범죄의 신설, 미수 범죄에 대한 처벌, 처벌기준의 강화가 이루어져야 하고, 고문범죄에 대해 형사소송법 상 공소시효의 적용을 배제해야 한다. 여기에 고문가해자들의 경우, 20년 이상 공직 진출을 제한하는 강력한 제재 조치가 마련되어야 할 것이다.
 
   앞서, 서울남부지법의 선고공판에서 추재엽 양천구청장은 1심 법원의 판단에 대해 ‘너무 가혹합니다’라는 최후 진술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법정 구속된 후 보석신청을 시도한다는 소문도 있다. 한편에서는 재심 무죄롤 받은 간첩조작 사건의 피해자들이 법정에서 고문 가혹행위를 부인한 당시 고문 수사관들을 위증혐의로 고소했다는 뉴스도 있다. 추재엽 전 보안사 수사관으로부터 고문을 당했다는 추가 피해 주장도 잇달아 터져나오고 있다.
 
  이제 고문가해자와 고문피해자가 법정에서 직접 충돌하는 사태가 임박해 있다. 이 과정에서 고문피해자의 2차 피해 발생이 매우 우려된다. 수십 년 전 고문을 자행한 장본인들이 사과는 커녕 여전히 고문사실을 부인하는 현실 앞에서 피해자들은 당시와 똑같은 좌절감, 인간성에 대한 기본적 신뢰의 붕괴를 다시 경험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국회가, 법원이, 그리고 우리 모두가 머뭇거리는 사이에 고문피해자들은 또다시 외로운 싸움에 나서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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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필: 임채도 (인권의학연구소 연구기획실장)
 
  임채도 연구기획실장은
  인권 이슈 가운데 고문 범죄에 대해 관심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많은 고문피해자와 가해자들을 만난 경험이 있답니다.
  김근태기념 치유센터, 고문방지법안 마련을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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