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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나만의 초음파 처방비법 (2013.3.29)2017-11-15 16:3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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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나만의 초음파 처방비법
 
양광모(인권의학연구소 운영위원, 청년의사 편집장)


나는 비뇨기과 의사지만 진료를 하지 않는다. 공보의를 마친 후 ‘코리아헬스로그’라는 블로그 미디어와 ‘청년의사신문’의 편집장으로 일하고 있다.
 
인권의학연구소 이화영 소장님 표현을 빌리자면 수련 마치고 바로 현장으로 들어온 ‘때(?) 묻지 않은 의사’다. 소장님이 실망이 하실 수도 있겠지만, 지면을 빌어 고백하자면 공보의를 마친 후 임상 경험이 전혀 없지는 않다. 노숙인 진료를 주로 하는 영등포 요셉의원에서 1년 반 정도 봉사활동 경험은 있다. 사실 그나마도 이야기를 꺼내기 민망한 게 비뇨기과 의사로 진료를 한 것은 ‘6개월’ 정도에 불과하다. 이야기를 꺼내봤자 본전도 못 찾을 것 같아 말을 안했을 뿐이다.
 
요셉의원은 주민등록증이 완전히 말소되어 건강보험의 혜택을 전혀 보지 못하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의료 봉사를 한다. 쉽게 말해 노숙자와 미등록(불법체류) 외국인 노동자들을 섬긴다. 당시 의욕에 넘쳤던 나는 블로그 취재로 맺은 요셉의원과의 인연을 봉사로 이어가고 있었다.
 
나름 요셉의원에서 비뇨기과 환자를 보면서 느낀 점들이 있다. 우선 환자들의 증상이 전형적이지가 않다. 대부분 전립선비대증 환자지만 문진을 하면 할수록 진귀한 과거 병력들이 나온다. 게다가 환자들은 그 과거 병력과 지금 증상의 연관성에 대해 집착한다. 마치 언제부턴가 꼬이기 시작한 인생을 누가 보상해주기를 바라는 것처럼 말이다.
 
과거 병력과 현재 증상에 대해 증명을 요구하는 경우는 꽤 난처하다. 사실 이를 증명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환자들의 요구가 거셀 경우에는 외부 병원으로 전원 하는 방법 외에는 별 수가 없다.
 
비뇨기과 진료를 시작한 뒤 ‘왜 이렇게 이상한 환자가 많지?’라고 생각하며 하루에 몇 번씩 전원을 보냈다. 나중에야 그 비용도 요셉의원에서 부담한다는 것을 알았다. 눈치가 보일 수밖에 없었다. 더 이상 함부로 전원을 보내면 안 될 것만 같았다. 미안한 마음에 뭔가 다른 방법을 찾아야 한다는 압박감(?)에 시달렸다.
 
우연히 진료실들을 배회하던 중 산부인과에서 산전 진찰을 위해 사용하기 위한 초음파를 발견했다. 지금까지 전립선비대증이 의심될 경우 경험적으로 약만 처방했는데 이제 전립선 초음파도 가능해진 것이다.
 
들뜬 마음에 전립선비대증 약 처방 받은 환자를 대상으로 전립선초음파를 시행해봤다. 그런데 검사 결과는 믿기지 않았다. 전립선 크기는 20cc를 정상으로 보는데 그 보다 크기가 작은 것이었다. 다시 말해 전립선비대증이 아니었다. 다른 환자를 검사해봤다. 역시 전립선비대증으로 약을 먹고 있었지만 검사 결과는 전립선비대증이라고 할 수 없는 수치였다. 다른 여러 환자들을 검사도 비슷했다. 전립선비대증인줄 알고 처방했던 환자들이 전립선비대증이 아니었다.
 
핑계를 대자면 전립선 크기와 배뇨 증상이 항상 비례하는 것은 아니다. 게다가 쓸 수 있는 약도 거의 같았다. 특히나 요셉의원처럼 제한적인 약 처방만 가능한 봉사단체에서는 그렇다. 하지만 ‘전문의’라고 나름 믿고 찾아준 환자들에게 몹쓸 짓을 했다는 자책감이 들었다. 정확하지 않은 설명과 추정에 의한 경험적 처방을 한 셈이다.
 
한동안 이 사건으로 우울감에 빠졌다. 그런데 일주일 후, 진료실로 증상이 좋아졌다고 환자가 찾아왔다. 진단명을 보니 전립선비대증. 예전에 초음파검사에서 사실 전립선비대라고 하기에는 부족하다고 판단한 환자다. 약은 예전에 처방한 알파차단제 그대로 처방했으니 증상이 좋아졌을 의학적인 이유는 없다.
 
‘선생님이 초음파 해준 이후로 묵은 체증이 내려간 것 같아요’
그랬다. 환자들이 원했던 것은 ‘전문의’에 의한 검사였다. ‘내가 큰 병인데 무료진료소에서 약만 먹고 있다’는 불안이 있었는데 비뇨기과 의사가 초음파 검사를 해준다고 하니 기뻤던 것이다. 이 환자뿐 아니라 이전에 검사를 받았던 대부분의 환자들이 해준 것도 없는데 ‘증상이 좋아졌다’며 찾아왔다. 심지어 비뇨기과에서 초음파를 해준다는 소문을 듣고 일부러 내원하는 신환도 생겼다.
 
혹자는 나의 초음파검사를 윤리적으로 비판할지도 모르겠다. 분명한 것은 내가 전문적 지식을 활용해 봉사활동을 했고 그 결과 환자들도 만족해했다는 것이다. 시간이 없다는 핑계로 봉사 활동을 그만둔 지금도 가끔 생각이 난다. 내가 초음파로 마음의 위안을 준 환자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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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광모 (비뇨기과전문의, 청년의사 편집장)
 
양광모 편집장은 의사에서 저널리스트로 변신한 분입니다.
최근 팟캐스트 인기 프로그램인 '나는 의사다'의 기획자이기도 하고,
건강-의학정보 관련 파워블로거이기도 합니다. 의사에서 블로거로,
그리고 저널리스트로의 길을 걷게 된 양광모 편집장은 인권의학연구소의
운영위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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