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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삼성반도체 백혈병 산재인정의 의미 (2014.10.31)2017-11-15 16:4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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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삼성반도체 백혈병 산재인정의 의미


공유정옥(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반도체노동자의 건강과 인권지킴이 반올림)
  
 
 지난 8월 21일 서울고등법원은 삼성반도체 기흥공장 백혈병 사망노동자 고 황유미, 고 이숙영님에 대하여 업무상 재해임을 인정한다고 판결했다(201123995).
 
 2011년에 이미 서울행정법원에서 같은 판결을 받았지만, 근로복지공단과 삼성전자가 항소하는 바람에 3년이 더 걸렸다. 고 황유미님의 유족들이 보상을 청구한 20076월부터 치면 7년이 넘어 얻은 성과다.

 

 

   첫째, 피해 노동자와 가족들의 보상받을 권리를 제대로 세워야 한다. 

 오랜 시간만큼 산재 인정을 받기까지의 과정도 험난했다. 반도체 공장의 환경은 이미 변했고, 삼성은 정보를 숨겼다. 정부가 조사에 나섰지만 그 과정과 결과에 투명성은 없었다. 게다가 삼성은 근로복지공단과의 소송에 보조참가인으로 참가해 방대한 반박자료를 쏟아냈다.
 
  어렵게 인정받은 만큼, 이번 산재인정의 의의를 잘 살리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고 황유미님의 아버지 황상기님은 삼성의 온갖 회유를 마다하고 7년 동안 버텼다. 삼성의 돈을 받고 산재신청을 포기하면 앞으로 다른 피해자들은 어떻게 보상을 받겠냐, 정부의 공식 인정을 받지 않으면 삼성이 어떻게 잘못을 인정하고 재발방지를 위해 노력하겠냐는 생각에서였다.

 
.
 
  그러려면 산재보험제도를 바꾸어내야 한다. 산재로 인정받기 위해 이렇게 오래 걸리고 힘겨워서야, 산재 피해 노동자와 가족의 치료와 생계를 위한 사회보장제도로서의 취지를 살릴 수가 없다.
 
  산재보상 뿐 아니라 삼성의 보상도 중요하다. 삼성은 그동안 여러 피해 노동자와 가족들을 조용히 찾아가 산재신청을 포기하는 대가로 위로금을 조금씩 쥐어주곤 했다. 형편이 어려워 이 돈을 받은 분들은 정신적 고통에 시달렸다. 이런 문제는 피해자들이 떳떳하게 받을 수 있는 보상, 삼성의 책임을 인정하는 성격의 보상을 통해 해결해야 한다. 국가 산재보험제도가 아직 포괄하지 못하는 현재 피해자들의 경제적 고통을 보완하는 방안이기도 하다.
 

 
  둘째, 노동자의 알 권리를 실질적으로 보장하도록 해야 한다.

  현재 산재보상을 받으려면 피해 노동자가 업무관련성을 입증해야 하는데, 작업환경에 대한 정보를 알지 못하니 입증이 너무도 어렵다. 물론 산재보상을 위한 입증 책임을 노동자에게 전가하지 않도록 법을 바꾸면 이 문제는 풀린다. 하지만 더 중요한 알 권리의 취지는 예방 때문이다. 노동자는 화학물질과 그 위험성, 보호와 예방의 방법을 제대로 알아야 산다”.
 
  현재 노동자 알 권리의 제일 큰 적은 영업비밀이다. 기업이 툭하면 이를 핑계로 작업환경 정보를 은폐하기 때문이다. 왜 영업비밀인지 근거도 없다. 정부도 한통속이다. 정보공개법 제9조 제1항 제7, 산업안전보건법 제63조 등에서 노동자의 건강 보호를 위한 정보는 영업비밀이라 해도 공개해야 할 의무가 있다고 명시하고 있는데, 그조차 지켜지지 않는다. 삼성은 심지어 자기 공장의 보호구 지급 현황조차 영업비밀이라며 공개를 거부하기도 했다.
 
  영업비밀의 남발을 막고 노동자의 알 권리를 보장하도록 기업과 정부의 책임을 강화하는 것, 이제라도 시작해야 미래의 질병과 죽음을 조금이라도 막을 수 있다.
 

 
  셋째, 삼성이 노동자 건강을 보호하고 예방하는 실질적 조치를 취하게 해야 한다.

  예방은 좀더 쉽게 산재인정을 받도록 하는 것보다 더 중요하고 더 좋은 일이다. 아무리 많은 돈도 건강과 생명을 잃은 젊은 노동자의 삶을 되돌릴 수는 없다. 유해 위험한 업무를 하청업체로 돌리거나 해외 공장으로 이전하여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곳으로 고통을 옮기는 것도 안될 일이다.


  그래서 반올림은 다음 몇 가지 재발방지대책을 만들어 삼성에게 요구하고 있다.


  첫째, 알 권리 보장을 위해 각 공장에서 취급하는 화학물질과 방사선 정보를 투명하게 공개하고, 이를 장기간 보존하여 산재신청 노동자들에게 조건 없이 제공하는 것. 둘째, 안전보건관리에 대한 객관적 평가를 위해 삼성으로부터 독립적인 연구진이 각 사업장의 화학물질과 안전보건 관리 현황에 대한 종합진단을 실시하고 그 결과를 공개하는 것. 셋째, 지역사회 안전을 위해 각 공장 노동자와 지역 주민, 그리고 환경, 보건, 안전 분야의 전문가로 구성된 (가칭)화학물질안전보건위원회를 설치하는 것. 넷째, 각 공장의 안전보건관리, 삼성건강연구소의 연구, 사내에 설치한 퇴직자 암 지원제도의 운영에 대하여 독립적인 외부 감사를 실시하고 결과를 공개하는 것. 다섯째, 안전보건에 대한 노동자의 실질적 참여권을 보장하는 차원에서 앞으로는 노동조합의 설립과 활동을 방해하지 않는 것. 

 

 
​  울리히 벡은 <위험사회>에서 다치고, 병들고, 죽은 노동자들은, 적어도 법적으로는, 의학적으로는, 기술적으로는, 사회적으로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래서 예방도, 치료도, 보상도 받을 수 없다고 했다. 문제를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문제 해결이나 예방이 안된다는 예리한 지적이다. 삼성반도체 백혈병의 존재는 7년만에 법적으로나 사회적으로 인정받게 되었다. 그러니 이제 남은 것은 이를 제대로 해결하고 예방하는 일이다. 그럴 때 비로소 황유미의 이름은 탄광의 카나리아 같은 희생자가 아니라 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을 향한 열쇠로 온전히 기억될 수 있을 것이다.






 
 
    
  공유정옥

  산업의학 전문의,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연구위원
  반도체 노동자의 건강와 인권 지킴이 반올림 간사
  2010년 미국 공증보건학회 산업안전보건상 국제부문
  2014년 제30회 보령의료봉사상
 
  스스로를 산업의학 전문의라기보다 전문의 자격증을 가진 노동보건운동활동가라고, 자신의 역할은 많은 제약과 모순투성이인 현실에서 조금 더 현장가까이 가서 노동자들을 대면하고 환경을 변화시키는 것이라고 설명합니다.

 

 



 2014. 10. 24. ~ 11. 30. 대학로 ‘아름다운 극장’에서 삼성반도체 공장에서 근무하다 백혈병으로 사망한 황유미 님의 이야기를 모티브로 한 <반도체 소녀>가 공연 중입니다.
 
 인권의학연구소, 김근태 기념 치유센터 '숨' 회원은 50% 할인된 가격으로 공연을 관람할 수 있습니다.(문의. 02-953-6542) 함께 해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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