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소 칼럼
인권과 피해자 치유에 관한 이야기
글보기
제목‘도가니’를 통해 본 장애인 성폭력, 그리고 인권 (2012.2.11)2017-05-31 12:21:00
작성자

[칼럼]‘도가니’를 통해 본 장애인 성폭력, 그리고 인권
 
한국여성민우회 이사 유 경 희


광주 인화학교 청각장애인들에 대한 성폭력 사건을 다룬 영화 ‘도가니’로 인해 세상이 들끓고 있다. SNS, 포털 사이트, 언론에 연일 나타나는 이슈가 되었다. 영화는 국민들의 분노를 촉발시켰고, 장애인 인권 현실에 대해 자각하게 하였으며, 재수사 촉구에 대한 서명과 관련법 제·개정 목소리를 높이는 등 참여의 필요성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당시 인화학교 사건을 폭로하고 진상 규명 등에 나섰던 교사는 ‘청와대를 비롯해 수많은 국가기관에 호소했으나 형식적 대응뿐이었다’고 토로한 바 있다. 대다수의 국민들은 대책위의 활동을 크게 인지하지 못하였다. 하지만 영화 ‘도가니’로 사건을 접하게 된 국민들의 분노는 사건을 감독하지 못한 관할 교육청, 제대로 된 수사를 하지 못한 경찰과 미온적인 판결을 내린 사법부로 이어졌다. 사회복지사업법 개정안을 처리 못한 국회 또한 예외가 아니었다. 사건 발생 7년 만에 인화학교 사건은 재국면을 맞게 되었고, 학교 폐쇄, 법인 취소 조치가 내려졌다.
 
성폭력 피해를 드러내고 사건화하는 과정은 그 누구에게도 용기가 필요한 일이다. 비장애인의 경우도 2차, 3차 피해에 노출되고, 그러한 과정을 견디지 못해 중도에 포기하기도 한다. 장애인 성폭력을 지원하는 실제 현장에서는 ‘도가니’의 현실이 늘 일어난다. 피해를 드러내는 일도, 사건지원도 훨씬 힘겹다. 피해자의 침묵을 유도하는 사회에서 가해자는 양산되고, 사건은 은폐되며, 그 속에서 장애인의 삶은 피폐해지는 악순환이 생겨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장애인이 겪는 고통과 차별에 장애인 주체들의 목소리가 커지는 것도 사실이다. 장애인 성폭력 지원활동을 펼쳐 온 장애인 인권 단체들의 활동을 곁에서 지켜 본 바, 그 어려움을 알고 있기에 더 더욱 이 흐름이 어떻게 의미 있는 결과로 귀결될지 주목된다.
 
10월 28일,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이하 특례법) 개정안'이 28일 국회 본 회의에서 가결되었다. 일명 ‘도가니법’이다. 기존 특례법 6조의 ‘항거불능’ 조문 삭제, 장애인 및 13세 미만 아동 대상 범죄의 공소시효 폐지, 13세 미만 강간죄에 대한 형량 강화, 장애인 보호시설 종사자의 장애인 대상 성범죄 시 법정형의 2분의 1까지 가중처벌이 주된 내용이다. 법 개정의 핵심은 가해자 처벌 강화이며, 실제 법 테두리 안에서 장애인 피해자가 피해를 입증해야 하는 문제, 즉 범죄성립 요건은 오히려 강화되었다. 피해자가 심각한 장애상태가 아니면 성폭력에 대해 저항이 불가능하지 않다는 해석으로 적용될 소지가 다분하기 때문이다. 이것이 단체들이 우려하는 지점이다. 반성폭력운동 현장에선 형법 297조 강간죄 규정에 대한 ‘최협의 폭행, 협박설’ 완화 및 모든 성폭력 범죄에 대한 친고죄 폐지, 유사성교행위의 강간죄 적용 등의 내용을 지속적으로 주장해 왔다. 이를 배제한 채 내놓은 급조된 장애인 성폭력 대책의 실효성에 의문이 생기는 이유이다.
 
또한 장애인 성폭력 등 인권침해 방지대책특별위원회 구성을 의결하였다. 장애인 성폭력 등 인권침해 문제를 조사하고 관련법 개정을 포함한 종합 대책 마련을 위해 여야 국회의원 18명이 내년 5월까지 한시적으로 활동한다고 한다. 문제에 대한 심각성을 인식하고, 장애인 인권침해 방지를 위한 구체적인 대책이 만들어지기 위해 제일 먼저 할 일은 피해자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일 일이다. 제대로 된 실태조사를 통해 현실을 바로 아는 일, 장애인 가장 가까이서 문제해결을 돕는 이들과 대안논의가 함께 이루어져야 위원회의 책임 있는 역할을 다할 수 있을 것이다.
 
일련의 상황을 지켜보면서 드는 생각은 지금의 사회적인 관심이 일시적인 분노에 그치고 지나쳐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수없이 많은 분노를 경험했지만 그 시기를 지나치면 분노는 공중에 흩어지게 되어 있다. 분노가 유지되는 시점에 만들어내는 생산적인 결과물이 있어야 한다. 장애인 인권 찾기에 한 걸음 더 다가서길 바라는 생각에서다. 아직도 사는 지역에 장애인시설이 들어오는 것을 원치 않는 주민들이 있고, 장애인 단체의 입주를 꺼리는 건물주가 있으며, 장애인의 삶은 나와는 다른 동정과 연민의 대상일 뿐인 의식이 지배하는 우리들이 있다. 우리가 그들과 함께 어울려 살아갈 준비가 되어 있지 않으면 그 분노는 가치적이지 않다.
 
‘도가니’ 영화의 흥행으로 인화학교 피해자들에 대한 언론취재로 대책위가 함께 있는 공부방과 그룹홈 등 생활공간이 노출되어 피해자들에게 또 다른 피해가 되고 있다는 이야기가 들린다. 언론의 과도한 관심으로 피해 학생과 가족들의 아픈 기억이 다시 되살려지고 있어 우려된다고도 한다. 한 달여 도가니 열풍은 지속되고 있지만 정작 청각장애인들은 이 영화를 보기 어렵다고 한다. 한글자막을 제공하는 영화관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주체가 배제되는 아이러니.
 
이러한 현실이 문제이다. 장애인들의 현실을 배려않는 비장애인 중심의 지나친 관심 아니면 무관심! 일상의 영역에서 ‘장애인 권리 찾기’에 대한 우리들의 의식을 진지하게 성찰함이 필요하다. 변화는 그 이후에 오는 것이다.
 
 
......................................................................................
 
 
 
*프로필
 

 
       현재 한국여성민우회 이사. 민우회 성폭력상담소 운영위원. 서울시 여성위원회 위원.
      서울시 노인 정책 전략그룹 위원. 여성가족재단 운영위원. 한국여성장애인연합 감사
 
      경력:
      한국여성민우회 대표. 한국여성민우회 가족과성상담소 소장.
      한국여성민우회 생활협동조합이사. 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 공동대표.
      전국성폭력상담소ㆍ 피해자 보호시설협의회공동 대표.
 
 
정부/ 기관 경력:
규제개혁위원회 위원(2007-2008)
청소년보호위원회 성문화분과 위원(2001-2002)
경찰청ㆍ법무부ㆍ정책 자문위원(2002-2005)
여성가족부 정책자문위원(2005-2009)
중앙건강가정정책위원회 위원(2006-2007)
모자보건심의위원.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전문위원(2005-2007)
여성재단 운영위원. (재)서울여성 운영위원 외(2005-)
혁신포럼 운영위원. 사회복지공동모금회 배분실행위원.
여성신문 편집위원.
댓글

(자동등록방지 숫자를 입력해 주세요)
페이스북 트위터
[때아닌 모든 곳에서 전시] 안내전시기간: 2024. 2. 6 - 2024. 3. 24 전시장소: 김근태기념도서관 전관 기획: 이희경참여 작가: 워꺼라운드 (김건희, 방아란, 양효윤, 이동경, 이희경) 주관.주최: 워꺼라운드후원: 인권의학연구소, 김근태기념도서관 퍼포먼스: 2024. 2. 17. 14시1. <잘 지냈나요?>구성: 이희경 / 낭독: 이동석2. <자화상>시: 정명자 / 구성: 이동경, 양효윤 / 출연: 정명자, 양효윤 / 음향디자인: 신동원원문보기 : lrl.kr/Jhmj ... See MoreSee Less
페이스북으로 보기
[공지] 2024 정기 총회 개최 안내1. (사)인권의학연구소는 모든 임원과 정회원님들께 진심으로 감사와 평화의 인사를 드립니다.2. 오는 2024년 2월 26일(월) 늦은 5시부터 인권의학연구소는 정관 제20조(총회소집)에 의거하여 사단법인 인권의학연구소 정기총회를 개최할 예정입니다.3. 2024년 정기총회는 인권의학연구소 1층 소강당에서 대면으로 진행할 예정입니다.4. 이번 정기총회 안건은 - 2023년도 사업보고와 결산보고에 대한 감사결과 심의 - 2024년도 사업계획(안)과 예산계획(안) 심의 - 기타 안건5. 부득이하게 총회에 참석하지 못하는 임원과 정회원께서는 2024년 정기총회 개최(2월 26일) 전까지 위임여부를 알려주시기 바랍니다. 첨부한 위임장을 작성하시어 인권의학연구소 사무국으로 문자 사진(010-6375-6234), 이메일(imhrc@naver.com), Fax(02-711-7589) 보내주시기 바랍니다. 감사랍니다.문의: 인권의학연구소 사무국 (02-711-7588, imhrc@naver.com) ... See MoreSee Less
페이스북으로 보기
[2024년 인권의학연구소 장학생 모집](사)인권의학연구소는 2024년 제3회 인권의학연구소 장학생을 모집합니다. 인권의학연구소 장학사업은 연구소 후원회원이자 『열세 살 여공의 삶』의 저자인 신순애 선생의 기부로 마련되었습니다.신순애 기부자의 지향에 따라 국가폭력 피해자와 가족들의 교육을 위해 소중하게 사용하고자 합니다. 본 장학사업을 통해 국가폭력 피해 생존자는 물론 그 2, 3세대가 민주화를 위한 국가폭력 피해자의 저항과 희생의 숭고한 의미를 되새기는 계기가 되길 바랍니다.자세항 사항은 아래 포스터와 링크를 통해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imhr.or.kr/index.php/notice/?board_name=notice&mode=view&board_action=modify&board_pid=79&search_...문의사항은 인권의학연구소 사무국으로 언제든지 연락주시기 바랍니다.- 이메일 : imhrc@naver.com- 전 화 : 02-711-7588#인권의학연구소, #장학사업,#2023년장학생모집,#장학생모집, #국가폭력,#교육,#장학생, #장학생선발 ... See MoreSee Less
페이스북으로 보기
[초대합니다]김근태기념치유센터‘숨’ 개소 10주년에 초청합니다.6월 26일(월) 오후 3시, 김근태기념치유센터 개소 10주년 기념행사를 합니다. 10주년을 맞아 다양한 행사는 물론 만찬도 준비되어 있습니다.지난 10년의 역사를 돌아보며 처음의 각오와 의지를 겸허히 돌아보는 자리에 함께 해주세요.세월이 흘러도 초심을 잃지 않고, 끝까지 피해자들과 정의의 편에 서 있겠다는 꺾이지 않는 마음을 다시 모아보는 자리에 함께 해주세요. -일시: 2023년 6월 26일 오후 3시-장소: 성가소비녀회 내 김근태기념치유센터‘숨’(주소: 성북구 길음로 9길 46번지)-문의: 02-711-7588김근태기념치유센터‘숨’ 올림 ... See MoreSee Less
페이스북으로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