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소 칼럼
인권과 피해자 치유에 관한 이야기
글보기
제목왕따유감 - 학교폭력에 대처하는 방법을 생각해보며 (2012.3.9)2017-05-31 12:21:53
작성자

〔칼럼〕왕따 유감

-학교폭력에 대처하는 방법을 생각해 보며-

 

손창호(의사, 인권의학연구소 운영위원)

 

왕따란 “공주병이나 왕자병이 있거나 모든 사람과 반대되는 생각을 하거나 독단, 독선적이어서 도저히 어울릴 수 없는 사람” 이라는 것이 네이버 검색에서 나온 정의입니다. 그리고 이런 결과 집단 따돌림의 대상이 되는 것이 바로 왕따입니다. 하지만 이런 식의 생각은 사실관계를 완전히 뒤집어서 보는 것입니다. 실제는 왕따 여서 따돌림을 받는 것이 아니라 따돌림이란 현상으로 인해 생겨난 결과물이 바로 왕따입니다. 집단으로 한 개인을 따돌리고 공격하는 극히 잔인하고 비이성적인 현상이 발생하여서 이에 대한 희생물로 왕따란 것이 생겨난 것입니다. 이러한 사실의 선후관계를 명확히 하여야만 집단따돌림과 그 희생자로 왕따가 된 아이의 문제를 정확히 해결해 나갈 수 있습니다.


군대에서 훈련병으로 있을 때였습니다. 당시 군대에서 가장 강조되는 말은 “구타금지” 였습니다. 학교에서부터 생활화되고 군대에 와서 그 절정을 이루는 것이 구타 였던 당시에 군대에서 구타금지를 밤낮으로 강조하는 것은 명백히 진일보한 모습일 것입니다. 그런데 구타금지 라는 표어 아래에서 행해지는 신병 정신교육시간에 가장 강조되었던 것은 “맞을 짓을 하지 말자”였습니다. 즉 군대에서 구타를 없애는 가장 근본적인 해결책은 맞을 짓을 안 하면 된다는 것입니다. 폭력행위를 가해자의 문제로 보기보다는 피해자로부터 비롯된 문제라는 보는 당시 대한민국 군지도부의 전도된 사고가 말단 사병들에게까지 전파되고 교육되어졌습니다.


집단따돌림이란 현상이 한 집단에서 발생할 경우 그 양상은 소위 “수건돌리기” 양상이 됩니다. 즉 따돌림이란 현상자체가 유지되기 위해서 지속적으로 그 희생양이 필요합니다. 따라서 누군가는 수건을 받아야만 하는 수건돌리기 게임과 마찬가지로 누군가는 따돌림의 대상 즉 왕따가 되어야만 하는 것입니다. 진료실에서 왕따로 찍힌 아이들의 얘기를 들어보면 처음에는 자신이 왕따가 아니라 다른 아이가 왕따이었는데 어느 날 갑자기 자신이 왕따가 되어버리고 말았다는 경험을 종종 얘기합니다.


설사 왕따를 당한 아이가 많은 문제를 가지고 있다고 하더라도 이것이 따돌림이란 현상을 설명할 수는 없습니다. 사실 집단적인 따돌림이란 말할 수 없이 잔인하며 비겁한 행동입니다. 더구나 그 집단이 학교와 같이 내가 선택할 수도 그리고 벗어날 수도 없는 집단이라면 그것이 주는 고통은 엄청나다는 말로도 부족합니다. 자기 스스로에 대한 정체성이 흔들리며 나란 인간이 과연 살만한 가치가 있을 것인가 하는 의문을 일으키게 합니다.  아무리 나쁜 범죄를 저지른 사람이라 하더라도 고문은 안 되는 것처럼 아무리 볼썽사납고 재수 없는 행동을 하더라도 한 개인의 인격을 파괴할 수 있는 집단따돌림은 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범죄의 내용과 질에 의해 고문이 정당화될 수 없듯이 집단따돌림이란 현상은 어떠한 경우에도 정당화될 수 없는 것입니다.


따돌림을 통해 받는 고통은 무척 큽니다. 자신이 속해 있는 집단으로부터 배척받는다는 것은 피해당사자에게는 세상전체로부터 버림받는 다는 느낌을 가져다줍니다. 초기에는 이런 따돌림에 대해 항의도 해보고 때로는 따돌리는 대상에 고개도 숙여보고 무시도 해 보지만 이런 모든 과정들이 좌절될 때 한 개인은 극심한 무력감에 빠져듭니다. 자신은 살만한 가치가 없는 존재라는 느낌은 자살을 생각하게 만듭니다. 이렇게 자신을 괴롭히는 세상에 대한 증오 못지않게 못난 자신에 대한 분노는 극심한 자기혐오감을 생겨나게 합니다. 청소년기 1-2년 동안 당하였던 이런 기억은 때로 평생을 따라다니며 사람을 괴롭히기도 합니다.


이러한 집단따돌림의 피해자인 왕따에 대해서는 당연히 세심한 접근이 요구됩니다. 만일 왕따로서 피해자가 있다면 먼저 문제의 심각성을 정확히 파악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럴 때 중요한 것은 아이가 자신의 얘기를 충분히 자유롭게 할 수 있도록 해 주는 것입니다. 특히 아이의 얘기 중에 부모가 아이의 잘못을 지적 한다던가 섣부른 해결책을 제시하는 것은 금물입니다. 사실 집단따돌림을 당한 아이가 부모나 선생님에게 자신의 어려움을 호소하는 것은 아이 입장에서 쉬운 일이 아닙니다. 첫째는 자신이 왕따라는 사실을 실토하는 것은 무엇보다 자존심을 손상시키는 일입니다. 둘째 아이들은 이런 사실을 어른들에게 알릴 경우 도리어 일만 더욱 키우는 결과가 아닐 까 하는 두려움 역시 큽니다. 네이버에서 “왕따를 해결하는 방법”으로 아이들에게 주로 호응 받는 방법은 어른들에게 알리는 것이 아닙니다. 담임이나 부모에게 알리는 것은 따돌림을 악화시키는 지름길이라는 것이 훨씬 호소력 있는 주장으로 받아 들여 지고 있습니다. 아이들이 채택하는 최선의 방법은 “일진”과 친해지는 것입니다. 아이가 자신이 왕따라는 것을 얘기한다면 차라리 그것을 세상에 드러내는 아이의 용기에 대해 칭찬하고 격려해야 합니다.


특히 주의해야 할 것은 왕따인 아이의 태도를 변화 시킬려고 하는 시도입니다. 피해자인 아이에게 “너의 이런 모습이 친구들에게는 거만하게 보일 수 있어. 좀 태도를 바꾸어보아” 라는 식의 충고는 아이로 하여금 문제는 자신의 오만한 성격, 직설적으로는 “네가 싸가지가 없어서 문제가 생겼다” 는 식의 메시지를 줄 수 있습니다. 실제 대부분의 아이들은 부모에게 문제를 얘기하기 전에 여러 가지 문제해결을 위한 시도를 해봅니다. 친구들에게 웃는 얼굴로 친절하게 대해보기도 하고 자신에게 부당하게 대하는 것에 대해 화도 내어보고 때로는 아예 무시해 보기도 합니다. 하지만 따돌림이 이미 시작되고 나면 친절한 태도는 알랑방귀가 되고 항의하는 것은 난폭한 것이 되고 무시하는 것은 싸가지 없는 태도가 되어버립니다. 그래서 대부분의 경우 피해자인 아이를 변화시키는 것은 문제해결에서 중요한 측면이 아닙니다.


집단따돌림 현상자체의 해결책은 피해자의 변화가 아니라 가해자의 변화 또는 그런 환경의 변화가 중심이 되어야 합니다. 당연히 따돌림이란 현상이 일어나기 전에 아이들에게 이런 현상이 얼마나 병적이고 비겁하며 또한 큰 피해를 유발하는 가 하는 사전교육이 충분히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이 가장 중요한 해결책중 하나입니다. 불행히도 내 아이가 왕따가 되었을 경우, 대처요령이라고 하기는 무엇 하지만 고려해 볼만한 사항은 다음과 같은 것이 있을 것 같습니다.


첫째는 아이가 친구들이 따돌리는 것 같다는 얘기를 한다면 이를 무시하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대부분의 경우 따돌림을 부모에게까지 알리는 것은 하다하다 안되니까 얘기하는 것입니다. 너무 부모가 걱정하는 것도 아이를 불안하게 할 수 있습니다. 냉정하고 그리고 진지하게 아이의 얘기를 듣는 것이 좋습니다.

둘째는 앞에서 얘기하였듯이 부모의 의견을 말하지 말고 얘기를 충분히 하도록 잘 들어주는 것이 먼저 필요합니다. 부모가 잘 들어만 주는 것은 아이에게 부모가 자신의 의견과 감정을 존중해준다는 느낌을 줄 수 있고 이런 태도는 아이에게 그동안 받은 스트레스를 다소나마 털어내는 계기를 만들어 줄 수 있습니다.

셋째는 아이가 따돌림을 당한 그 정도를 가능한 구체적으로 아는 것도 필요합니다. 따돌림의 기간, 따돌림에 참여하는 아이들의 숫자, 따돌림을 주도하는 아이는 몇 명이고 이름은 무엇인지는 물론이고 따돌리는 형태는 구체적으로 어떤 지도 아는 것이 좋습니다. 폭언은 얼마나 자주 어떤 식으로 하는 지, 폭력행위는 없었는지 등등도 세밀하게 아는 것이 좋습니다. 만일 핸드폰 문자 등으로 온 폭언이 있다면 삭제하지 말고 남겨두도록 하는 등 할 수 있다면 구체적인 따돌림의 증거도 가지고 있는 것이 좋습니다. 이렇게 따돌리는 정도를 구체적으로 알아야지 그 해결책도 보다 구체적이 될 수 있습니다.

넷째는 담임선생님의 도움이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선생님과 부모님이 만나서 아이에게 가해지는 따돌림의 행위에 대해 서로 구체적으로 정보를 교환해야 합니다. 선생님과 부모사이에 서로가 느끼는 문제의 심각성이 차이가 나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그리고 이를 위해서는 따돌림 현상의 구체적 형태를 서로 아는 것이 필요합니다. 가해자인 아이들에게 현재하는 따돌림은 범죄행위라는 것을 명확히 알리고 적극적으로 막아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피해자인 아이의 잃어버린 자존심을 회복하고 다시 용기를 낼 수 있도록 지속적인 격려를 해 주는 것이 필요합니다. 만일 아이가 생활의 적응에 지속적인 어려움을 가진다면 정신과적 진료가 도움이 될 수 있다는 것도 염두에 두어야 합니다.
..........................................................
 

손창호(정신건강의학 전문의)

프 로 필: 현재 나눔정신건강의학과 원장이며 인권의학연구소 운영위원(의료지원분과)이다. 인권의학연구소에서 진행하고 있는 폭력피해자 그룹치료에 참여해 왔다. 트라우마에 관심있는 의료인, 활동가와 함께 "트라우마 치유법" 스터디 모임을 진행하고 있다.
 
 
 
 
 
 

댓글

(자동등록방지 숫자를 입력해 주세요)
페이스북 트위터
[때아닌 모든 곳에서 전시] 안내전시기간: 2024. 2. 6 - 2024. 3. 24 전시장소: 김근태기념도서관 전관 기획: 이희경참여 작가: 워꺼라운드 (김건희, 방아란, 양효윤, 이동경, 이희경) 주관.주최: 워꺼라운드후원: 인권의학연구소, 김근태기념도서관 퍼포먼스: 2024. 2. 17. 14시1. <잘 지냈나요?>구성: 이희경 / 낭독: 이동석2. <자화상>시: 정명자 / 구성: 이동경, 양효윤 / 출연: 정명자, 양효윤 / 음향디자인: 신동원원문보기 : lrl.kr/Jhmj ... See MoreSee Less
페이스북으로 보기
[공지] 2024 정기 총회 개최 안내1. (사)인권의학연구소는 모든 임원과 정회원님들께 진심으로 감사와 평화의 인사를 드립니다.2. 오는 2024년 2월 26일(월) 늦은 5시부터 인권의학연구소는 정관 제20조(총회소집)에 의거하여 사단법인 인권의학연구소 정기총회를 개최할 예정입니다.3. 2024년 정기총회는 인권의학연구소 1층 소강당에서 대면으로 진행할 예정입니다.4. 이번 정기총회 안건은 - 2023년도 사업보고와 결산보고에 대한 감사결과 심의 - 2024년도 사업계획(안)과 예산계획(안) 심의 - 기타 안건5. 부득이하게 총회에 참석하지 못하는 임원과 정회원께서는 2024년 정기총회 개최(2월 26일) 전까지 위임여부를 알려주시기 바랍니다. 첨부한 위임장을 작성하시어 인권의학연구소 사무국으로 문자 사진(010-6375-6234), 이메일(imhrc@naver.com), Fax(02-711-7589) 보내주시기 바랍니다. 감사랍니다.문의: 인권의학연구소 사무국 (02-711-7588, imhrc@naver.com) ... See MoreSee Less
페이스북으로 보기
[2024년 인권의학연구소 장학생 모집](사)인권의학연구소는 2024년 제3회 인권의학연구소 장학생을 모집합니다. 인권의학연구소 장학사업은 연구소 후원회원이자 『열세 살 여공의 삶』의 저자인 신순애 선생의 기부로 마련되었습니다.신순애 기부자의 지향에 따라 국가폭력 피해자와 가족들의 교육을 위해 소중하게 사용하고자 합니다. 본 장학사업을 통해 국가폭력 피해 생존자는 물론 그 2, 3세대가 민주화를 위한 국가폭력 피해자의 저항과 희생의 숭고한 의미를 되새기는 계기가 되길 바랍니다.자세항 사항은 아래 포스터와 링크를 통해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imhr.or.kr/index.php/notice/?board_name=notice&mode=view&board_action=modify&board_pid=79&search_...문의사항은 인권의학연구소 사무국으로 언제든지 연락주시기 바랍니다.- 이메일 : imhrc@naver.com- 전 화 : 02-711-7588#인권의학연구소, #장학사업,#2023년장학생모집,#장학생모집, #국가폭력,#교육,#장학생, #장학생선발 ... See MoreSee Less
페이스북으로 보기
[초대합니다]김근태기념치유센터‘숨’ 개소 10주년에 초청합니다.6월 26일(월) 오후 3시, 김근태기념치유센터 개소 10주년 기념행사를 합니다. 10주년을 맞아 다양한 행사는 물론 만찬도 준비되어 있습니다.지난 10년의 역사를 돌아보며 처음의 각오와 의지를 겸허히 돌아보는 자리에 함께 해주세요.세월이 흘러도 초심을 잃지 않고, 끝까지 피해자들과 정의의 편에 서 있겠다는 꺾이지 않는 마음을 다시 모아보는 자리에 함께 해주세요. -일시: 2023년 6월 26일 오후 3시-장소: 성가소비녀회 내 김근태기념치유센터‘숨’(주소: 성북구 길음로 9길 46번지)-문의: 02-711-7588김근태기념치유센터‘숨’ 올림 ... See MoreSee Less
페이스북으로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