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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내나이 열다섯 살만 됐어도....." (2012.6.27)2017-11-14 15:18: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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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내 나이 열다섯 살만 됐어도…”

  

김종민 (제주4.3사건위원회 전문위원)      

 
 
  제주4․3사건은 제주 역사가 시작된 이래 전무후무한 희생을 몰고 왔고, 오늘날까지도 아물지 않는 깊은 상처를 남겨 놓았다. 사건 발발부터 한라산 금족령(禁足令)이 풀릴 때까지 7년 7개월 동안 제주도민들은 너무도 큰 희생을 치렀다. 특히 군․경 토벌대가 1948년 11월 중순께부터 약 4개월 동안 벌인 이른바 ‘초토화작전’ 때 중산간마을 주민들이 치른 희생은 이루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것이었다. 제주4·3위원회 진상조사보고서는 희생자 수를 2만5천명에서 3만명 가량으로 추정했는데, 이는 당시 제주도 인구의 1/10에 해당한다.
 
  초토화작전 때 마을을 포위한 군인들은 다짜고짜 집집마다 불을 붙였고 불기운에 놀라 뛰어나오는 주민들을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닥치는 대로 학살했다. 요행히 피했다 하더라도 점점 조여 오는 토벌대의 포위망에서 벗어난다는 것은 생사를 건 처절한 몸부림이었다. 아낙네들도 어린아이들을 양손에 붙들고 살을 에는 겨울 한라산으로 향했다가 얼어 죽고 굶어 죽었다.
 
  진작부터 해변마을로 소개(疎開) 내려온 사람들의 희생도 컸다. 토벌대는 가족 중에 한사람이라도 없으면 ‘도피자 가족’이라 하여 수시로 학살했다. ‘총에 맞아 죽은 사람은 고통이 짧으니 그나마 괜찮은 경우’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처참한 광경들이 잇따라 벌어졌다. 해변마을 주민들도 고초를 겪기는 마찬가지였다. 토벌대는 걸핏하면 ‘무장대 지원 혐의’가 있다며 총질을 했다. 야수로 돌변한 토벌대에 의해 여성들의 수난도 컸다.
 
  이승만 정부와 뒤이은 군사정권은 오랫동안 사건에 관한 논의조차 막았다. 4·3사건을 소재로 소설과 시를 썼다는 이유로 정보기관에 끌려가 고문을 받거나 구속됐다. 유족들은 억울하다는 호소 한 마디 못한 채 연좌제에 걸려 장래가 막혔다. 1987년 6월항쟁 이후 겨우 말문을 틀 수 있었고 40주년인 1988년이 되어서야 조금이나마 전국적으로 논의가 시작되었으니, 광주항쟁을 다룬 한 소설가의 말을 빌린다면, 고립무원의 섬 제주도 주민들에게 그간의 세월은 ‘아무도 달려와 주지 않았던 40년’이었다.
 
  필자는 제주도의 한 일간지 기자로서 1988년 3월 우연히 사건에 대해 공부하기 시작했는데 어느덧 25년이란 시간이 운명처럼 흘렀다. 공부 시작 처음부터 증언 채록에 힘썼다. 이는 관련 자료가 너무 부실하고 왜곡돼 있었기 때문이었다. 1901년 발생한 ‘이재수 난’처럼 기록이 안 된 채 시간이 많이 흘러버려 그날의 사연들이 풍문으로만 남지 않게 하기 위해선 신문을 통해 널리 알려 검증을 받는 과정이 필요했다. 그렇게 된다면 그 증언들이 역사의 사료로 기능할 것이라 생각했다. 또한 어르신들이 필자의 집요한 질문에 기억조차 하기 싫은 과거를 마지못해 말씀하시지만,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그 억울한 사연이 신문에 소개되는 것만으로도 조금이나마 위로를 받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그렇게 증언 채록을 하다보니 그간 7천명 가량 인터뷰하였다.
 
  처음엔 힘들었으나 점차 이력이 붙자 서럽게 눈물을 흘리는 할머니 앞에서도 허벅지 한번 살짝 꼬집으면 감정을 억누를 수 있었고 목표했던 인터뷰를 ‘냉정하게’ 이어갈 수 있었다. 그러나 제정신으로는 들어주고 글로 옮기기 힘든 이야기도 많았다. 부모가 총살을 당할 때 맨 앞줄에 서서 박수를 치고 만세 부를 것을 강요당한 사람들, 굴속에 숨었던 가족들이 아기 울음소리 때문에 들켜 몰살당하는 모습을 요행히 밖에 나왔다가 숨죽여 흐느끼며 바라봤던 사람들, 토벌대가 인근을 지날 때 들킬까 두려워 우는 아기의 입을 틀어막았다가 자기 자식을 질식사시킨 어머니, 이들의 심정을 온전히 이해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수 십 년 세월이 흘렀어도 마음의 상처는 더 커져만 갔다. 경찰의 고문에 아들을 잃은 90대 할머니의 가슴에는 시커멓게 멍이 들어 있었고, 목에는 아기 주먹만한 혹이 나 있었다. 평생을 울면서 가슴을 치고 목으로 피를 토하는 바람에 그리됐다고 했다. 20대에 남편과 아들을 잃고 딸 하나 키우며 50여 년간을 청상과부로 살아온 한 할머니는 “그때가 생각날 때마다 가슴이 미어져 숨을 쉬기조차 어려운데도 의사는 아무런 병이 없다고 한다”며 답답해했다. 삼대독자인 손자를 잃은 후 할아버지는 곧 자살했고, 아버지는 아들의 소상날에 목을 맸다. 한 유족은 잠잘 때마다 가위눌린 적이 한 두 번이 아니라고 말했다. 노인들은 “다시 그런 일이 벌어진다면 그 꼴 보지 않고 차라리 자살하겠다”는 말을 입버릇처럼 했다.
 
  또한 이 글을 통해 차마 소개하기 어려운 참혹하고 엽기적인 별의별 사연들을 많이 들었어도 그럭저럭 견뎌왔지만, 어떤 증언들은 허벅지 살짝 꼬집는 것만으로는 부족했다. 가슴이 먹먹하고 무언가가 울컥 쏟아져 나오는 듯하여 서로 말을 못하고 눈도 마주치지 못한 채 한참동안 방바닥 또는 천장만 바라보기도 했다. 10대 초반에 당시를 겪었던 분들의 증언을 들을 때가 주로 그랬다. 당시 성인이었던 할머니들이 눈물을 흘리며 말씀하시는 것과 달리 애써 감정을 억누르며 말하는 ‘소년’의 증언을 듣는 것은 참으로 힘들었다.
 
  당시 11살이던 한 증언자는 숨어 있던 굴이 군인들에게 발각되자 급히 도망쳤으나 어린 동생은 붙잡혀 총살됐다고 말했다. 그는 그 군인들을 대한민국 국군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리고 지금도 현충일에 절대로 태극기를 달지 않는다고 했다. 그는 또 휴가 나온 아들의 군복 입은 뒷모습을 보고 순간적으로 거부감을 느꼈던 씁쓸한 기억도 말했다. 당시 12살이던 한 증언자는 집이 불타던 모습이 떠올라 지금도 붉은 벽돌 집을 정면으로 바라보지 못한다고 했다.
 
  당시 8살 어린 나이였던 한 증언자는 뒤뜰에 나갔다가 집으로 들어가려는 순간 경찰들이 정문으로 들이닥치는 모습을 보고 무서워 뒷문 뒤에 숨었는데, 그는 그곳에서 경찰이 집에 불을 지르고 방안에 있던 할아버지(당시 54세), 아버지(28), 어머니(29), 첫 번째 동생(7), 둘째 동생(5)을 총으로 쏴 죽이는 모습을 겁에 질려 넋이 나간 채 숨죽이며 지켜보았다. 경찰이 돌아간 뒤 그는 불길 속에 뛰어들어 애기구덕 안에 있던 막내동생(1살)을 꺼냈으나 곧 굶어죽었다. 아직도 경찰관 3명의 이름을 기억하고 있는 그는 “난 지금도 그 경찰들이 우리 가족을 눈을 뜨고 쐈는지, 감고 쐈는지 알고 싶습니다. 말 못하는 짐승에게도 그렇게 할 순 없습니다”라고 말했다.
 
  그리고는 한동안 말을 잇지 못하고 있을 때 옆에서 지켜보던 그의 아내가 한 마디 거들었는데, 그 때 울컥했고 그날 허벅지는 시커멓게 멍들었다. 그의 아내는 “남편의 입버릇은 ‘열다섯 살만 됐어도…’입니다. 남편은 ‘내가 열다섯 살만 됐어도, 그 정도의 힘만 있었더라면 시신을 마당으로 끌어내 불에 타는 것을 막았을텐데…’라는 말을 수시로 중얼거립니다. 제사가 끝나면 혼자 옛 집터에 가서 오랫동안 머물다 옵니다”라고 말했다.
 
  당시 10대 소년들이 어느덧 손자, 손녀를 둔 70대 나이가 되었다. 어린 나이에 가족이 몰살당해 졸지에 고아가 되었음에도 폐허로 변해버린 잿더미를 맨손으로 일구어 다시 아름다운 제주섬을 복원해냈다는 것은 기적적인 일이며, 존경받아 마땅한 일이다. 정부는 2003년 <진상조사보고서>를 채택하였고, 이 보고서를 근거로 대통령이 제주도민에게 사과하였다.
 
  그러나 ‘소년’의 가슴 속 상처가 너무도 깊었다. 그 상처를 치유할 손길이 절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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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로필>
 
 김 종 민(제주 4.3사건위원회 전문위원)
 
1980년부터 1987년까지 고려대학교 사학과에서 공부했다. 1987년 8월 <제주신문>에 입사해 1988년 3월부터 1990년 1월까지 ‘4·3특별취재반’ 기자로서 4·3사건을 취재하였고, 1990년 6월 <제민일보> 창간에 참여해 역시 ‘4·3특별취재반’ 기자로 활동하며 1990년~1999년까지 기획특집 <4·3은 말한다>를 연재하였다. 2000년 1월 4·3특별법이 제정된 후 ‘제주4·3사건 진상규명 및 희생자 명예회복 위원회’ 전문위원에 선임되어 지금까지 일하고 있다. 1993년 <4·3은 말한다> 취재로 한국기자상을 수상했고, 1997년 한국언론연구원의 ‘탐사보도 우수사례’로 선정되었다. <4·3은 말한다>(전5권), 4·3위원회의 보고서인 <제주4·3사건 진상조사보고서>를 썼고, <제주4·3사건 자료집>(전11권)을 펴냈다. 2008년 개관한 제주4·3평화기념관의 전시패널 문안을 썼다.
 
(덧붙이는 글: 필자의 프로필사진은 다랑쉬굴탐사현장에서의 모습으로 제주4.3평화기념관 전시패널의 하나인 다랑쉬굴에 있는 사진이다: 다랑쉬굴은 지금 입구를 막아놓은 상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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