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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불법사찰 피해자의 고통 (2012.9.12)2017-11-14 15:2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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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불법 사찰 피해자의 고통
 
 
이화영 (인권의학연구소 소장)
 
 
지난 8월 초, 2009년 기무사에 의한 불법 사찰 피해자였던 엄윤섭씨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엄윤섭씨는 우울증을 앓아왔다고 한다.
 
미국의 권위 있는 언론지인 뉴욕타임지는 한국의 민간인 불법사찰 (illicit surveillance of civilian) 사건을 1972년 당시 닉슨대통령을 사임하게 했던 워터게이트호텔 도청사건에 비유해 한국판 워터게이트라고 보도했다. 뉴욕타임지는 또한 모든 한국 대통령이 공무원의 비리조사와 고위공직인사 검증을 위해 경찰 검찰, 세무 당국의 협조 하에 조직을 운영해왔다고 했다.
 
그러나 정작 사찰 피해자로 드러난 이들은 공직과는 아무 관련이 없었다. 다만, 현 정부에 비판적 말과 행동을 표현한 적이 있던 민간인들이었다. 사찰 피해자들은 자신들이 국가가관의 사찰대상이었음을 확인하는 순간부터 심각한 스트레스로 고통 받았고, 그 중 한 명이 최근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우리 사회의 불법 민간인 사찰을 처음 확인한 것은 윤석양 이병이 '기무사에 의한 민간인 사찰'을 폭로한 1990년이다. 물론 과거 박정희 전두환 군사독재시절에 수많은 정치적 불법 사찰이 존재했지만 공식적으로 드러난 것은 이때가 처음이다. 민간인 사찰을 폭로했던 윤석양 이병은 1995년 올해의 인권상을 수여받았고, 당시 사찰 리스트에 올랐던 1,300여 명 중 145명은 국가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1998년 재판부는 '보안사가 군과 무관한 민간인을 사찰한 것은 명백한 헌법위반'이니 200만원의 위자료를 각각 지급하라고 판결하였다. 그 후 보안사는 기무사로 이름이 바뀌었다.
 
그러나 기무사의 불법 정치사찰은 근절되지 않았다. 2009년 8월 쌍용차파업농성장에서 민주노동당원과 가족의 일상을 촬영한 동영상과 수첩이 공개되면서 그 실체를 또 드러냈다. 동영상에는 최근 자살한 엄 씨와 그의 가족 동영상이 포함되어 있었다. 이 사건으로 인해 신경과 치료를 받았던 엄씨는 "생업을 위해 일하는 작업실 앞에서 버젓이 동영상 찍은 것을 보고 소름이 끼친다”고 했고 자신의 부인이 직장에 출근하는 모습이 찍힌 동영상에 불안감을 감추지 못했다. 민간인 불법 사찰은 피해 당사자 뿐 아니라 가족에게도 영향을 미치고 있었다.
 
2010년, 이제는 국무총리실의 민간인 사찰 사실이 드러났다. 청와대의 지시로 사찰대상자 파일의 삭제시도가 추가 폭로되면서 그 파장은 걷잡을 수없이 커지는 듯 했다. 사찰 피해자로 드러난 김종익씨는 블로그에 이명박 정권의 정책 비판 동영상을 올린 이유로 사찰을 받았고 국민은행 하청업체 사장이었던 그는 직장을 잃었다. 이 정도 사실로 사찰을 해왔다면 얼마나 많은 정치적 사찰이 국민들을 대상으로 진행되었을지 짐작이 가고도 남는다.
 
민간인 사찰은 헌법에 명시된 국민의 사생활을 보호해야할 국가의 의무를 위반하는 명백한 위법이다. 국가기관이 민간인을 사찰함으로써 헌법에 보장된 개인의 사생활권을 침범하는 범죄를 저질렀다는 것인데 과연 이 정부가 스스로 그 진상을 낱낱이 규명할 수 있을까 심히 우려된다.
 
사찰 피해자였던 엄 씨의 자살 소식을 접하며 사찰이 한 개인에게 가하는 정신심리적 폭력의 무게가 얼마나 심각했는지 느껴진다. 과연 사찰 피해란 무엇이고 어떻게 치유해야 할 것인가? 그대로 방치해 둔다면 제2, 제3의 엄 씨와 같은 피해자가 발생하지 않을까?
 
불행히도 국가기관에 의한 사찰 피해 관련 정신심리학적 논문이나 학계의 공식적 발표는 없다. 그러나 한 개인을 지속적으로 미행하고 괴롭힌다는 점에서 국가기관에 의한 조직적 스토킹(organized stalking)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서구에서 오랜 기간 동안 연구되고 발표되어온 스토킹 피해에 준해 사찰 피해와 그 치유책을 살펴보았다.
 
스토킹 피해자 치료에 초점을 둔 한 리뷰 연구는 피해자들의 외상후스트레스장애(이하 PTSD), 불안, 우울 증상을 특징적으로 보고하였다. 피해자의 80% 이상에서 극도의 불안과 수면부족, 과다경계, 비판적인 말과 행동 회피 등의 증세를 보였다. 피해자의 약 25%에서 공포와 무력감, 우울감을 극복하지 못해 자살 시도를 하였다. 불안 해소를 위해 담배나 알콜 섭취가 증가되었다. 심리적 고통 이외에도 오심, 피로감과 같은 신체적 증상이 심해지고 고혈압이나 천식과 같은 기존의 질병이 악화되기도 했다. 1999년의 한 연구는 대조군에 비해 스토킹 피해자들은 PTSD의 빈도와 강도가 훨씬 높았고, SCL-90R 결과 우울과 대인예민성이 매우 증가하였음을 보고하였다. 이 연구는 피해 당사자 뿐 아니라 피해자의 가족, 자녀, 직장동료, 친구들에게도 심리적 영향을 미친다고 하였다.
 
국민을 보호해야할 국가가 자신을 감시하고 미행하는 상황에 처하게 되면 누구나 심각한 분노와 불안을 느낄 수 있다. 한 개인이 스토킹 하는 것도 엄청난 스트레스로 작용함을 서구의 연구들에서 확인하였는데, 사찰 대상자들도 누군가의 감시에 놓여 있다는 점에서 이들과 유사하게 극도의 스트레스로 불면증과 악몽, 자기검열, 우울증에 시달릴 수 있는 것이다. 더구나 거대한 권력을 가진 국가기관이 도청이나 개인정보 수집 등 전문적이고 다양한 사찰 방법을 사용한다고 가정할 때 사찰 피해자가 느끼는 심리적 고통은 개인의 스토킹 경우보다 훨씬 더 클 수밖에 없다. 이처럼 누군가에게 미행당하고 도청당하고 있다는 것은 실제로 가해지는 신체적 폭력만큼이나 큰 심리적인 폭력일 수 있다. 그 결과 스트레스와 분노 반응, 지속적인 자기검열과 경계 때문에 비판적인 말을 삼가게 될 뿐 아니라 인간관계의 제한을 결과한다. 결국 사찰 피해자들은 사찰 스트레스로 인해 정상적인 대인관계, 직장생활, 사회생활을 해나가기 힘든 것이다. 즉, 내가 누구를 만나면 그 사람도 피해를 입을 것이라는 불안감 때문에 사람들을 피하게 돼 대인관계에 어려움이 피해자를 고립하게 만든다.
 
이러한 피해자 고통을 완화시키는데 정신심리 전문가에 의한 교육과 상담이 도움이 될 수 있다. 피해자들의 분노, 불안, 과다경계, 자책감, 무력감, 우울, 고립과 같은 증상들이 사찰과 같은 극도의 스트레스 때문에 발생하는 정상적인 반응임을 교육과 상담을 통해 이해시킨다. 인지행동요법은 피해자의 이 세상에 대한 잘못된 사고들을 변환하는데 도움이 된다. 특히 아무도 믿을만한 존재가 이 세상에는 없다는 사고들을 재고할 수 있게 한다. 심호흡법과 이완요업은 심각한 불안 증세를 완화하는 데 도움이 된다. 집단치료는 피해자의 고립과 소외감을 덜게 한다. 또한 사찰로 인한 분노, 상실, 좌절을 떨치고 안전하고 지지적인 환경을 제공해줄 수 있다. 다만 그룹치료진행자는 정신건강전문가로 기술적, 정서적으로 숙련자여야 한다.
 
모든 피해자 치료의 주된 목표는 피해자 고통을 완화시키고, 정상적인 대인관계, 직장생활, 사회생활의 기능을 회복하는 것이다. 가장 좋은 치료는 더 이상 사찰을 받지 않는 것이지만 사찰이 중단되어도 적절한 치료적 개입이 없으면 피해자의 삶은 그 이전으로 쉽게 회복되지 않는다. 거대권력의 감시와 미행에 놓여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무력감과 인간관계의 제한 등으로 우울증이 오고 적절한 지원을 받지 못하면 자살까지도 결과하게 되는 것이다. 사찰 피해자의 고통을 개인적인 문제로 방치하면 안 되고 가능한 빨리 전문가에 의한 치료적 개입이 절실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러한 피해를 돌아보면서 결코 국가기관에 의한 민간인 사찰은 정당화될 수 없고 이는 국가권력의 남용이자 국가가 저지른 범죄임이 명백해진다. 엄윤섭 씨의 경우, 국가가 그를 스스로 목숨을 끊게 만들었다는 정황에서 사회적 타살로 보는 것이 더 정확하다. 사찰 사건의 진상 규명과 함께 사찰 피해자들의 고통을 이해하고 치유하는 일을 더 이상 미뤄서는 안 될 것이다.
 
( Reference)
 
Pathe M, Mullen PE: Managemetn of victim of stalking, Advances in Psychiatric Treatment (2001). vol 7 .pp.399-406
 
Pathe M, Mullen PE: The impact of stalkers on their victims, British Journal of Psychiatry (1997) vol 170, pp.12-17
 
Westrup D: The psychological impact of stalking on female undergraduates, Journal of Forensic Sciences (1999), vol 44, pp.554-5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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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화영 (인권의학연구소 소장, 의사)
 
미국에서 암연구를 하던 중 9ㆍ11 테러와 '테러와의 전쟁'을 지켜보면서 대학원에서 국제분쟁학 공부를 시작하였다. 2005년 분쟁지역 현장실습 중 이스라엘에서 팔레스타인 고문 피해자들을 치료하는 "이스라엘의 인권을 위한 의사회" 의사들을 통해 인권과 의료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2007년부터 국내 의대에 "인권 의학" 과목을 개설, 강의하고 있고, 2008년고문에 가담한 의료인들에 대한 서적인 "배반당한 히포크라테스"를 번역 출간하였다. 2009년 7월, 의료인들의 인권마인드를 높이고, 폭력으로 인해 인권을 침해당한 피해자들을 지원하고자 인권의학연구소를 개소하였다. 현재 트라우마 치유센터 건립에 집중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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