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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칼럼] COVID-19 시대의 연결과 소외2020-06-02 06:4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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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COVID-19 시대의 연결과 소외


김종명 / 소아청소년 정신건강의학과 의사

 

"타자를 배타적으로 느끼게 만들고 소외시키며 물리적 거리를 띄우게 만드는 감염과 면역의 시대는 우리 사회로의 환대와 서로의 연결을 보장해야만 극복할 수 있다는 것에 코로나 시대의 역설이 존재한다."

 

  중학생 때 나와 같은 반에 몸이 많이 불편한 장애인 여학생 친구 A가 있었다. 거동은 모두 휠체어에 의지해야 했고, 혼자서는 화장실에 가지 못해서 어머니가 매일 여러 차례씩 학교에 와야 했다. 학급이 있던 1층에서 3층의 음악실이나 과학실로 이동해야 할 때면 여간 고생이 아니었다. 결국, 학교에서 엘리베이터를 짓기로 했다. 수백 명의 비장애인 학생이 아닌 1명의 장애인 학생을 위한 것이었다. 그때부터 학교의 다른 학생들과 학부모들의 반대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학부모들은 어차피 몸이 안 좋은 A가 성적이 좋은 바람에 내 아이가 내신을 못 받는다, 어머니가 지나치게 극성이다, 곧 졸업하는데 이후엔 쓰이지도 않을 엘리베이터를 만드느니 모두가 혜택받을 수 있는 다른 투자를 해라는 등의 천박한 얘기를 공공연히 했다. 학교의 어떤 아이들은 A의 어머니가 선생님들을 돈 주고 매수했다거나, 1명을 위해서 왜 우리가 모두 희생을 해야 하느냐는 이야기를 떠들어댔다. A의 어머니에 대해 여성 혐오적인 욕을 하고, 장애인 딸에게 헌신적인 이유에 대한 억측도 늘어놓았다.

 

  지금은 여느 건물에나 있는 고작 엘리베이터였다. 엘리베이터는 A가 조금 더 편하게, 그리고 이동 때마다 눈치 보지 않을 수 있게 한 작은 배려이자 당연한 교육의 권리였다. 몸이 아무리 불편한 학생이어도 학교 5층의 모퉁이에서 친구와 비밀스러운 수다를 떨고, 자유롭게 음악실과 과학실을 오가야 한다. 엘리베이터는 A가 기억할 학창 시절의 추억을 학급의 작은 책상에 가두지 않고, 더 넓고 구석진 공간까지 연결할 수 있는 장치였다. 결국 어렵게 완성된 엘리베이터는 A4층과 5층에도 올려주었다. 엘리베이터 설치의 논의 과정에서 어떤 친구들과 학부모는 평소 장애인에 대한 그릇된 생각을 더욱 증폭시키며 수치심 없이 드러냈다. 한편으로 엘리베이터는 다른 친구들에게 소수자에 대한 혐오누구든 누려야 할 당연한 권리에 대한 배척을 떠올리고 고민하게 했다. 엘리베이터처럼 어떤 현상과 현상에서 파생되는 다양한 반응과 주장은 그 사회의 명과 암을 알리고 타자에 대한 우리의 태도를 보여주는 창이기도 하다. 그리고 우리가 어떤 상태인지 지금 어디까지 도달해 왔는지를 깨닫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게 하는 단서이자 발판이 되기도 한다.

 

  COVID-19의 시대가 길어지고 있다. 감염의 전문가들은 수년 내에 COVID-19가 종식되지 않을 수도 있다고 말한다. 전 세계 사람들이 하루 생활권에서 살고 있는 2020년에 우리는 새롭게 발생한 신종 감염병의 영향권에서 벗어날 수 없게 되었다. 손에서 손으로 혹은 눈으로는 보이지 않는 경로를 통해 바이러스가 옮겨올 수 있다는 사실은 우리를 방어적으로 만든다. 면역 기능의 원칙은 병원성을 막론하고 이질적인 모든 것을 제거하는 것이다. 협소한 엘리베이터에 함께 타고 있는 저 사람이 나를 감염시키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은 이제 비정상적인 편집적 사고가 아니라 일상적 불안이자 뉴 노멀이다. 그리고 그 불안은 나와 당신을 갈라놓게 만들 수 있는 합리적 의심과 사고체계를 만든다. 엘리베이터는 지금 나에게는 감염의 가능성 탓에 당신을 타자로 만들고 우리를 서로 소외시키는 공간이다.

 

  그 와중에 57일 국민일보는 '[단독]이태원 게이클럽에 코로나19 확진자 다녀갔다'에 이어 59‘“결국 터졌다”... 동성애자 제일 우려하던 찜방서 확진자 나와라는 제목의 기사를 연달아 보도했다. 성적 지향과 COVID-19 감염과는 의학적으로 아무런 관계가 없음에도, 감염을 소수자성과 연결 지음으로써 혐오를 조장한 것이다. 이러한 종류의 수준 낮은 반동은 새로운 일도 아니다. COVID-19뿐만 아니라 감염병 질환, 특히 HIV 감염은 오래전부터 성소수자를 차별하는 도구로 사용되어왔다. 감염병은 자의적인 도덕적, 종교적 판단의 도구가 되어 소수자로서 존재하는 것을 징벌하는 의미가 씌워지기도 하였다. 많은 의사는 정확한 정보를 전달하기는커녕 과학의 이름 아래 차별을 강화하기도 했다. HIV 감염의 역사를 통해 소수자의 차별이 감염병 질환을 예방하고 확산을 막는데 큰 장해물이라는 것을 이미 경험했음에도, 국민일보는 아웃팅에 대한 불안을 조성함으로써 시민의 자발적인 협조가 필요한 방역을 방해했다. 공중 보건의 심각한 위해임에도, 저급한 논리가 우선이었다. 슬프게도 방역과 차별이 뒤엉키는 감염의 시대에는 바이러스만큼이나 혐오의 감정도 쉽게 퍼진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대한 담론이 벌써 많지만, 무엇이 조금이라도 더 옳은 예측인지 판단하기는 어렵다. 다만, 나는 소아청소년을 진료하는 의사로 다시 자리에 돌아와 지금 여기에서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일지부터 고민해본다. 국민일보 기사를 계기로 성소수자의 의료 시설 이용에 대한 권리가 잠시 화두가 되었다. 여전히 진료 현장에서 의료인에게 성소수자임을 밝히는 것은 어려운 일이고, 성소수자를 혐오하는 의료인이 다수 존재하며, 특히 트랜스젠더는 혐오 발언을 더 자주 경험하고 의료 기관 이용을 거부당하기까지 한다. 많은 성소수자 청소년은 더욱 고립된 사각지대에 있다. 성소수자가 감염의 온상이라고 보도하는 신문과 성소수자를 비난하는 무책임한 어른들을 성소수자 청소년이 곁에서 지켜보고 있다. 진료 시간에 머뭇거리다 나에게 성소수자임을 어렵게 밝히는 많은 청소년이 COVID-19가 시작된 후 더욱 위축되고 소외되는 것을 본다. 한편으로, 소수자에 대한 혐오가 공중 보건의 위해로 직결된다는 사실은 소수자의 인권을 보장하는 것이 COVID-19를 종식하는데에도 필수적인 조건임을 뜻한다.


​  눈으로는 보이지 않는 경로를 통해 전해지는 감염이라는 현상을 통해 우리는 모두 연결되어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기도 했다. 타자를 배타적으로 느끼게 만들고 소외시키며 물리적 거리를 띄우게 만드는 감염과 면역의 시대는 우리 사회로의 환대와 서로의 연결을 보장해야만 극복할 수 있다는 것에 코로나 시대의 역설이 존재한다. 그래서 연결소외에 대해 다시 떠올려본다. 그 누구든 감염으로부터 차별 없이 보호받을 권리가 있다는 당위, 그러기 위해서는 공동체의 연대가 필요하다는 전제, 그리고 충분히 준비된 사회의 모습은 우리를 지키는 유일한 방법이자 다음 세대에게 물려줄 수 있는 몇 안 되는 자산이다.


​  몸이 불편했던 내 친구 A를 철없이 욕하던 중학생들에게 왜 엘리베이터가 필요한지 따뜻하게 설명해주던 어른은 단 한 명도 없었다. 오히려 A를 욕하는 학부모의 논리를 나와 같은 또래 친구들은 그대로 답습했다. 그때와 지금은 얼마나 다를까. 우리는 성소수자 청소년을 비롯한 많은 이들에게 어떤 메시지를 주고 있는가. COVID-19는 우리 사회의 위기이기만 한 것은 아니다. COVID-19의 시대를 통해 우리 사회에 소수자에 대한 강력한 혐오가 존재하는 것을 새삼 깨달았으니, 이제 필요한 것은 바로 여기에서 연대의 실천을 보여주는 것은 아닐까.

 

  지구의 반대편 끝까지도 순식간에 연결할 수 있는 기술의 발전 탓에 어쩌면 역사상 가장 위험한 시기를 겪게 된 우리에게 감염은 개인의 차원이 아니라 인간종의 생존 차원으로 다가오기도 한다. COVID-19의 시대를 살아가는 한 사람으로서 희망의 한끝을 잡고자 하는 마음은, 인간에게 혐오를 이겨내고 연대할 수 있는 속성이 없다면 얼마나 더 많은 사람이 죽어가야 할지 가늠할 수 없다는 공포에서 비롯된 것인지도 모르겠다. 마지막으로 몸이 불편했던 나의 중학교 친구 A가 조금이라도 건강이 나아져 웃으며 잘 지내고 있기를, 그리고 COVID-19가 다음 시대를 연결하는 엘리베이터가 되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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