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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칼럼] 산업재해 트라우마 치유를 위한 조건2020-11-28 19:4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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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산업재해 트라우마 치유를 위한 조건

  

 

손창호 (정신건강의학 전문의인권의학연구소 이사)

 

 

1년에 2,400명의 노동자가 산업재해로 사망해도 누구 하나 제대로 처벌받지 않는 상황에서 

 중대재해기업 처벌법이 노동자와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기 위해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 회부되었다.

 그러나이 법안이 회부된 지 두 달이 넘도록 법제사법위 법안심사소위에 상정조차 되지 않았고

오히려 법안에 대한 찬반논란은 심화하고 있다

이렇게 두 달이 넘는 시간 동안 누군가는 산업재해로 인해 삶을 마감하고 

또 누군가는 산업재해 후유증으로 고통받고 있을 것이다

 

(인권의학연구소는 지난 10월 노동재해 트라우마”(마산거제 산재추방운동연합자료집에 기고한

 손창호 이사의 산업재해 심리적 외상의 신경생물학적 이해와 치유를 위한 조건” 글 중에서 일부를 발췌하여 

산업재해 피해자의 고통과 치유에 대한 인식을 다음과 같이 나누고자 한다. 

  

산업재해 트라우마 생존자는 외상(트라우마사건 이후에도 외상 사건이 발생한 그곳에서 다시 생계 활동을 해야만 한다.  산업재해 트라우마는 외상 사건이 피해자가 벗어날 수 없는 그 생계현장에서 발생하였다는 점에서 심리적 외상 후유증에 또 다른 고통을 추가한다.  결국이런 조건은 외상 사건의 끊임없는 재경험화를 결과하며 벗어날 수 없는 절망감을 가져온다.  더욱이 기업과 국가가 산업재해 사건에 대한 진실과 책임규명,  그리고 충분한 재발방지책을 마련하지 않을 경우에는 자신이 속한 직장공동체에 대한 신뢰 상실이 세상 전체에 대한 불신으로 이어지게 된다.

 

이렇게 장기간 심각한 고통을 유발할 수 있는 산업재해 트라우마 피해자에게 적절한 치료가 필요하지만현재 우리 현실에는 치유를 어렵게 하는 여러 가지 요인들이 있다.

 

그 첫 번째 요인은 산업재해에 대한 기업과 국가의 책임회피를 꼽을 수 있다.

가해자의 은폐 행동이 계속되고 도리어 피해자의 치유 및 보상 요구를 냉대하고 그로 인해 피해자의 경제적 사회적 고통은 더욱 심해지는 한,  2차 피해는 원래의 외상적 사건보다 더 큰 심리적 상처를 안겨주고 확대하게 된다.

 

두 번째는 심리적 외상에 대한 치료체계가 미흡하다는 점이다

근원적으로는 현행 건강보험 수가 체계에서 그 문제가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지만,  어쨌든 현재 우리나라 의료기관에서 이루어지는 정신건강의학과 진료는 약물치료 중심인 것이 사실이다.  특히 간과하지 말아야 할 것은 피해자가 호소하는 고통의 사회구조적 맥락을 무시한 개별 증상 중심의 치료적 접근은 피해자의 고통을 피해자 개인의 문제로 국한해서 더욱 무력감에 빠지게 하고 피해자를 정신과 환자로 낙인찍어 버리는 위험성이다.  산업재해와 같은 극심한 심리적 외상으로 인한 각종 증상은 약물치료의 효과가 아주 제한적이며 상담치료,  EMDR,  마음 챙김 명상,  그리고 각종 신체기반 치료와 같은 여러 다양한 치료방법들이 필요하다.  하지만 이런 심리적 외상에 대한 다양한 치료가 가능한 치료 기관이 아직은 부재한 상황에서 피해자 개인이 이런 치료들을 알아서 선택하는 것은 어려울 수밖에 없다.  따라서 적절한 치유를 위해서는 산업재해 트라우마의 사회구조적 이해와 해결에 대한 지원과 연대라는 바탕 하에 약물치료와 각종 정신치료 및 신체기반치료를 제공할 수 있는 통합적 치유시설이 필요하다.

 

트라우마로 인한 고통은 오래전부터 알려져 왔고 문헌에서도 그 기록을 찾을 수 있다.  하지만실제 트라우마에 의해 정신적 질환이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이 의학적으로 인정이 된 것은 미국 정신과 진단통계편람 제3판 (DSM-)에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가 실렸던 1980년이 처음이다.  1980년에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 진단이 인정을 받았던 것도 사실은 의사와 과학자들의 연구결과에 의한 것이 아니었다.  당시 성폭력 피해 여성의 고통에 분노한 여성운동의 성장과 베트남 참전군인회의 전쟁 트라우마 피해자들의 압력과 같은 피해당시자들의 사회적 정치적 노력에 의한 것이다.  이처럼 의료현장에서마저 트라우마 피해에 대한 평가에 인색한 것은 산업재해와 같은 인재에 의한 트라우마는 항상 가해자와 피해자가 있다는 점에 연유한다.  트라우마는 강자가 약자에게 가하는 폭력의 결과물이다.  남성이 여성에게,  성인이 아동에게집단이 개인에게젊은이가 늙은이에게 폭력을 가한다.  사회적 강자인 가해자는 트라우마 피해를 은폐하고 눈 감으려 하고 실제 잘 잊어버린다.  세계대전을 겪은 서구 유럽에서는 전쟁 트라우마 피해자의 고통을 포탄 쇼크 (shell shock), 또는 총알 증후군 (bullet syndrome)이라고 명명하였다.  대포 소리나 총소리를 듣고 병이 난 겁쟁이라고 조롱하였고 실제 이런 전쟁 트라우마 피해자를 교도소에 보내기도 하였다.

  

성폭력은 성관계가 되고,  산업현장에서 벌어진 참상은 그냥 먹고 살려면 겪을 수밖에 없는 임금에 그 위험수당이 포함되어서 이미 금전적으로 지불된 사고가 된다.  심지어 개인의 부주의 탓으로 돌려서 때로 피해자를 가해자로 만들기도 한다.  이렇게 트라우마 고통은 항상 전적으로 피해자의 몫이 된다.  그래서 트라우마 치유는 약하고 말 못 하는 사람들의 연대에서 시작될 수밖에 없다.  이런 연대에 기반을 둔 사회적 인정과 공감은 공포에 질린 피해자의 편도체를 안정시키고 무너진 사회적 뇌 체계를 다시 작동시키는 발판이 된다.  또한,  연대를 통해 진실과 책임소재가 명확히 밝혀져서 산업재해의 재발 방지를 위한 제도적 개선으로 이어진다면 이제 외상 사건은 고통과 절망의 기억만이 아닌 더 안전하고 믿을 수 있는 세상을 만든 계기로 의미를 부가할 수 있을 것이다.  바로 이러한 사회적 인정과 공감 그리고 제도적 개선 자체가 산업재해 트라우마 생존자들의 치유를 위한 조건이자 치유과정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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