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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동행]하원차랑 선생님의 명복을 빕니다2021-07-22 17:3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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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행] 하원차랑 선생님의 명복을 빕니다

  

 2021720일 오후 6시30분, 하원차랑 선생이 소천했다. 향년 81. 이튿날 21일 오전 소천 소식을 접한 인권의학연구소 이화영 소장은 김장호 선생, 임채도 선생, 박민중 활동가와 함께 경상남도 밀양의 장례식장에 다녀왔다. 빈소가 마련된 밀양병원 장례식장에서 하원차랑 선생의 영정을 마주하니 모두 가슴이 먹먹했다. 특히, 지난주 하원차랑 선생이 병원을 퇴원하면 국가폭력 피해생존자 자조모임  회원들과 함께 밀양 방문을 계획하고 있던 터라 그 아쉬움은 더욱 진하게 남았다.

  

 <사진-1> 하원차랑 선생의 영정 사진이 있는 빈소 (밀양병원 장례식장).

 

  하원차랑 선생은 1941년 경상북도 영천에서 태어나 대구에서 고등학교를 마쳤다. 이후 부산에서 주로 사업을 했으나, 1970년대 말 오일쇼크로 국내 경제 불황으로 일본 오사카 숙부를 통해 일본에 건너가  공사 현장에서 일을 하였다. 그떄 현장 감독의 부탁으로 귀국하면서 부산에 살고 있는 감독의 친척에게 잠바 하나를 선물로 전해준 적이 있었다. 

 

  그런데, 1983년 7월 하원차랑 선생은 보안사에 의해 느닷없이 불법 연행되어 무자비한 고문을 당한 후 간첩이 되었다. 보안사는 일본에서 잠시 일했던 공사 현장 감독의 부탁으로 선물 하나를 심부름 했던 하 선생을 지령을 받고 국내 잠입한 간첩으로 조작하였다. 당시 보안사에 두달 가까이 불법감금되어 이루 말할 수 없는 고문을 당한 하 선생은 허위자백을 할 수 밖에 없었으나, 이 허위자백을 증거로 당시 법원은 간첩죄로 형을 선고하였다. 


 하원차랑 선생은 1990년 10월 2일 출소하기까지 약 8년의 시간을 억울하게 감옥에서 보내야 했다그 기간 동안에 하원차랑 선생은 계속된 전향공작과 회유를 뿌리쳤다. '간첩인 적이 없으니 전향할 것도 없다' 면서 끝까지 전향을 거부했던 선생의 감옥 생활은 더욱 가혹했다. 8년을 출역도 없이 독방에서 홀로 버텼으니 이를 통해 선생의 올곧고 강직한 성격을 쉽게 짐작하게 한다.

 

 1970-80년대 재일교포 등 일본 관련 조작간첩 사건에 연루된 많은 피해자들이 그렇듯 하원차랑 선생도 터무니없는 국가 공작에 의해 인생의 황금기를 감옥에서 보내야 했다. 1970년대 말, 숙부를 통해 일자리를 얻고자 일본으로 간 선택이 간첩으로 몰리게 될 줄 과연 누가 상상이나 했을까. 그렇게 건너간 일본에서 선생은 공사현장에서 일을 시작했고, 그 공사현장에서 만난 현장감독이 알고 보니 조총련계였다. 하원차랑 선생과 그 감독은 단순히 일하는 직장에서 만난 사이였다. 그러나 당시 보안사가 발표한 하원차랑 선생의 죄목은 그 감독에 의해 간첩 지령을 받고 국내에 잠입했다는 것이다. 그때 하원차랑 선생이 부탁받은 것이라곤 지령이 아니라 현장감독의 국내 처조카에게 전달할 잠바 하나였다. 직장 상사의 처조카에게 잠바 하나를 전달해준 것이 간첩 행위이고, 그것으로 8년의 옥살이를 했다는 것이 과연 가당키나 한 것일까.

 

 당시 한반도는 분단되어 있었지만, 일본 오사카의 조총련과 민단 사이엔 38선이 존재하지 않았다. 조총련과 민단의 관계가 당시 남한과 북한처럼 총구를 겨누고 있는 게 아니었다. 그럼에도 당시 남한의 박정희, 전두환 군사독재 정권은 조총련이라고 하면 무조건 북한과 연결해 왜곡하여 이용하면서, 국민의 거센 저항에 직면한 자신들의 정치적 생명력을 연명하기에 급급했다. 하원차랑 선생도 그 한반도의 분단과 정통성 없는 군사독재 정권이 만들어낸 수많은 희생자 중 한 명이었다.

 

 <사진-2> 조문객을 맞이하고 있는 유족들.

 

 단지 돈을 벌기 위해 일본으로 떠났던 결정, 그리고 공사현장에서 만난 현장감독의 잠바 전달 부탁은 하원차랑 선생의 인생에서 40대를 지우는 일이 되고 말았다. 그의 40대의 삶이 사라지는 동안 그의 가족 또한 말로는 다 옮기지 못할 모진 사회적 냉대와 아픔을 경험해야만 했다. 그와 그의 가족의 삶 전체가 하루아침에 무너져 내렸다.


 8년의 감옥생활을 마치고 출소한 하원차랑 선생은 중장비 기술을 가지고 공사현장을 뛰어다니며 그 누구보다 성실하게 살았다. 어찌 보면 국가에 의해 망가져버린 자신과 가족의 삶을 회복하는 유일한 길이 사회에서 다시 일어서는 것이라고 믿었을 것이다. 그러나 간첩이라고 하면 가족도 받아들이지 못하던 당시 한국 사회의 정서를 고려해보면, 이미 가족에게 남겨진 상처의 깊이는 생각처럼 쉽게 아물지 않았을 것이다. 이 부분이 하원차랑 선생도 그리고 그 가족에게도 가장 큰 아픔이자 비극이었을 것이다. 모두가 다 피해자다.

 

                                          <사진-3> 조문을 마치고 (고) 하원차랑 선생의 부인을 위로하다.. 

  

 장례식에서 영정으로 남아 있는 하원차랑 선생과 그 옆에서 손님을 맞이하고 있는 가족들의 모습이 뇌리에 깊이 남았다. 조문을 마치고 서울로 돌아오는 기차 안에서 여러 생각으로 마음이 무거웠다. 우리 국가와 사회는 과연 국가가 저지른 반인륜적 범죄가 어떻게 한 개인과 가족의 삶을 파괴하였는지 알려고 하는 것일까. 그리고 가족 역시 피해자이나 해결되지 않고 남아있는 각자의 상처로 인해 가족끼리도 소원해질 수 밖에 없었던 그 아픔에 얼마나 관심을 가졌나. 이것은 단순히 사법부의 재심 무죄선고와 배보상으로 해결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철저히 피해자 중심의 사고에서 우리 사회와 국가가 전면적으로 재고해야 한다. 그 이유는 국가가 저지른 범죄이고, 피해자와 가족은 여전히 그 상처로부터 회복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국가폭력 피해자 선생들의 소천 소식이 향후 계속해서 들려올 것이란 생각에 공연히 마음이 바빠진다. 생존해 있는 국가폭력 피해자들과 가족들은 고통의 무게를 나누어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모두가 피해자이다. 그럼에도 서로의 관계가 원상으로 회복되지 못한 그들의 남은 삶에 지금 우리 사회가 해야 하는 것이 무엇인가. 그들의 고통을 기계적으로 계산한 배보상금으로 해결하려는 국가의 사과 방식과 이를 당연한 것처럼 보도하는 언론에 큰 오류가 있었음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국가 폭력 피해자의 구제는 개인과 가족의 삶을 파괴하였다는 점에서 시작해야 한다. 모든 구제지원책은 파괴된 개인과 가족의 관계, 삶을 원상으로 회복하는 것에서 완성되는 것이다.

 

 이제 정말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사진-4> 조문을 마치고 서울로 올라오는 밤, 밀양역 앞에 선 김장호 선생과 이화영 소장.

 

 하원차랑 선생을 동료 그리고 친구로 여기며 평소에 매일같이 통화로 일상을 나누던 김장호 선생의 글을 공유한다. 김장호 선생은 하원차랑 선생을 영원한 우리의 친구라 부르고 있다. 피해자들이 미처 가족과도 못했던 이야기와 정을 서로 나누고 있었음을 짐직하게 한.

 

 

영원한 우리의 친구!!

 

720일 오후 630분, 하원차랑 선생님은 우리의 곁을 떠나셨습니다.

 

그렇게도 아파하시던 선생님께서 이제 더는 아프시지 않을

영원한 안식처로 편안히 가셨답니다.

 

가시는 길에 북망산 굽이굽이 돌아 저희들을 생각하며 되돌아보셨을지,
자꾸만 눈시울이 뜨거워집니다.

 

아직도 형, 갑장, 동생 하며 부르시던 모습이 우리의 온몸에 꽉 차 있건만,
여전히 하원차랑 선생의 모습이 우리의 뇌리에 아지랑이처럼 맴돌기만 합니다.

 

너무도 아쉬운 부분은 무죄 선고받고 이제 좀 재미있게 세상에서 두 어깨 으쓱이며 남부럽지 않게 가족들과 좋은 곳으로 여행도 제대로 못 하시고, 우리와 해외여행도 한번 가보지 못했다는 점입니다.

 

우리는 그렇게 하원차랑 선생을 놓아주면 안 되었지만,
잘 가라 친구야하며 고작 머리 숙여 인사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원차랑 선생이 영원한 안식처에서 이제 더는 고통스럽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비록 하원차랑 선생이 우리 곁에 안 계시지만,

우리가 기억하고 있다면 하원차랑 선생은 언제나 우리와 함께하실 것입니다.

 

2021년 7월 22일

김장호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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